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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안내

아름다운 우리의 혼 한산모시가 천년의 역사에서 깨어납니다.

한산모시 전시관

한산모시관 이미지
한산모시 전시관

한산모시 전시관은 지하 1층과 지상1층, 2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하에는 과거 옛 우리 조상님이 직접 입었던 모시옷을 복원하여 전시하고 있으며, 지상에는 한산모시의 특징을 보여주는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모시의 역사

HISTORY

삼국⋅통일신라시대

  • 삼국시대에는 제작기술의 발달로 세포細布가 대량으로 생산되었습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30승升에 이르는 저삼단紵杉段을 당나라에 보낼 정도로 섬세하면서도 고품질의 모시를 제작하는 등 최대 15승의 모시를 제작한 중국에 비하여 제직기술이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모시는 대표적인 특산직물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고려시대

  • 고려시대는 섬세하고 고운 모시뿐만 아니라 제직기술이 다양화되어 화문저포花紋紵布 사저포紗紵布 등의 기록과 사저교직絲紵交織으로 제직된 유물이 확인되는 등 특별한 품종의 모시가 제작되었습니다. 모시는 인삼과 더불어 중요한 교역물품으로 활용되었고 왕부터 평민에 이르기까지 상하 구분없이 가장 일반적인 의복의 재표로 다양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조선시대

  • 조선시대 모시는 관복, 제례복, 갑옷, 일상복 등 귀천에 관계없이 다양한 복식에 사용되었습니다. 모시는 문헌기록에서 섬세도, 색 등에 따라 다양하게 확인되며, 이전과 달리 항라亢羅로 제직된 모시가 새롭게 등장하였습니다. 육의전六矣廛에는 모시를 전문으로 팔던 저포전苧布廛을 중심으로 유통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한산과 임천이 모시를 공납하는 대표적인 지역으로 처음 등장하였습니다.

대한제국 근대

  • 의복제도가 간소화됨에 따라 모시를 사용한 복식의 범위가 축소된 반면, 신분제도가 해체되면서 계층에 따라 규제되던 복식의 제도도 변화되어 상류층뿐만아니라 다양한 계층에서 세모시를 의복의 재료로 사용하였습니다. 시장과 교통의 발달로 모시의 거래가 활성화 되었으며, 세모시의 대표적인 생산지로 한산의 명성이 확대되었습니다.

현대

  • 의복제도가 간소화됨에 따라 모시를 사용한 복식의 범위가 축소된 반면, 신분제도가 해체되면서 계층에 따라 규제되던 복식의 제도도 변화되어 상류층뿐만아니라 다양한 계층에서 세모시를 의복의 재료로 사용하였습니다. 시장과 교통의 발달로 모시의 거래가 활성화 되었으며, 세모시의 대표적인 생산지로 한산의 명성이 확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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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명품한산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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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명품한산모시

충남의 최남단에 위치한 한산은 고대부터 모시 생산지로 유명하였으며, 조선시대 문헌에서도 모시생산을 대표하는 지역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한산에서 모시가 언제부터 재배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통일신라시대 한 노인이 약초를 캐기 위해 건지산에 올라가 처음으로 모시풀을 발견하였으며, 이를 가져와 재배하기 시작하여 모시짜기의 시초가 되었다고 구전되고 있습니다.

천년의 미美를 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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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미美를 짜다

위대한 유산을 계승하고 천년의 美를 이야기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 모시인들의 삶을 소개하는 곳으로 4000번의 섬세한 손길로 만들어지는 한산모시의 제작과정을 영상을 통해 보여줍니다.

4000번의 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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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번의 손길

한산모시제조과장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전시공간으로 태모시만들기→ 모시째기→ 모시삼기→ 모시날기→ 바디끼워 새몰기→ 모시매기 → 씨실 꾸리감기 → 모시짜기 → 표백과 다듬질 등 한산모시를 만드는 전 과정이 사진과 함께 실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자연을 담은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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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담은 빛

동양의 5원색인 백, 청, 황, 적, 흑의 색들을 자연에서 채취하여 이를 천연염료로 만들고 모시를 염색하여 아름다운 빛을 담은 모시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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